지역발전과 시민통합에 앞장서는 지역언론의 중요성 강조
지역발전과 시민통합에 앞장서는 지역언론의 중요성 강조
  • 이천설봉신문
  • 승인 2016.07.1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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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에 입각한 진실되고 정확한 보도가 정론지의 소임

 
故 육영수여사추모동산건립위원회 창립으로 고인의 뜻·정신 기려

“지역언론이 언론의 폐해를 불식시키며 하나로 단합시키는 미디어의 역할, 소통의 역할을 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천설봉신문 창간 15주년을 맞아 건넨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덕담이다.
방송`언론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 전 위원장의 이 말은 성숙한 언론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고향이 이천인 이 전 위원장은 그의 경륜만큼이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언론사 정치부기자를 시작으로 정치부장, 대통령 비서실 공보수석, 청와대대변인, 공보처 차관, 국무총리 인사청문특별위원회위원장,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15대부터 4선국회의원으로서도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이경재 전 위원장을 만나 지역시민과의 소통의 장으로 지역언론이 나아가야할 방향 및 바른언론문화 정착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유년시절을 이천에서 보내고 어머니 고향 강화로 이사가

먼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향에 관한 얘기다.
이경재 전 위원장은 고향의 아련한 추억이 깃든 모습을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태어난 곳은 백사면 모전리 배징개 삼거리라는 곳이다. 아버지는 일찍 변변한 유산상속도 못받고 삼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강화가 고향인 어머니는 가난해서 강화특산품인 광목을 팔기 위해 나왔다가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며 “외가쪽 집안에서 괜찮은 학교를 나온 이들이 많아 외탁했다는 얘기를 곧잘 듣곤 했었다. 백사면 현방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3학년 초 읍내 관고리로 이사를 해서 이천제일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아직도 친구들과 향교로 설봉산으로 놀러 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지금도 모전리에는 친척들이 몇가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무렵 6`25 전쟁이 막 발발했을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삼촌집이 있는 음성과 어머니의 고향인 강화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이천을 떠나게 된 배경도 설명했다.


 그후 이 전 위원장은 “2013년 방송통신위원장 재임시 명절맞이 격려차 이천을 방문해보니  얼음지치던 시장통은 모두 현대식 시장으로 바뀌었고 환영하는 시민들의 플랜카드들 보면서 옛친구들 생각이 났지만 하나도 없었다”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나고 자랐던 고향 이천이 항상 그립고 관심을 가지게 되어 행사 때마다 내려오곤 한다며 속깊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정치개혁특별위원장 시절 지역구와 관련해서 이천선거구 분구 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이 사무실로 찾아와 관심을 기울여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역발전과 시민통합에 앞장서는 지역신문이 돼야

 이 전 위원장은 인사말로 “이천설봉신문은 지역의 대표적인 신문으로서 지역발전과 시민통합에 앞장서는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국민의 뜻을 기관이나 정부에 잘 전달해서 정책적으로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전하며 덧붙여서 “신문들이 지역갈등을 선동하고 조장하며 지역주민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본다”고 꼬집으면서도 “지역언론들이 그러한 측면을 하나로 단합시켜 서로 이해 조정을 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천설봉신문이 지역언론의 사명감을 갖고 시민을 위한 소통의 역할을 다 할 것을 당부했다.

언론의 기본사명은 잘못된 현실의 비판과 새로운 방향 제시

 이 전 위원장은 언론인이라 말하며, 1967년 정치부기자로 입사해 야당 출입기자로 활동하며 오랜 세월을 보내며 헌정사에 고비마다 현장에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이 전 위원장은 정계와의 인연을 밝히며 당시 최측근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던 시절을 상기했다.


 “회고 다큐멘타리를 신동아에 연재할 당시 정치 일선의 많은 분들을 만나보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되었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연설문을 써드리면 발표하시기도 했다”면서 “예컨대 ‘한국병을 고쳐 신한국 창조하자’는 문구는 문민정부 출범당시 ‘신한국 창조’가 국정지표의 큰 방향임을 제시했었다”고 했다.


 특히 언론계 생활을 하면서 느껴온 언론의 기본적인 사명에 대해 “언론은 잘못된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가도록 계도하는 것”이라며 “언론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비판적인 기자로 낙인찍혀 해직의 아픔도 경험하며 마냥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이 아닌 엄청난 어려움도 있었다”고 전하며, 신군부의 언론통제로 활동을 중단했다가 신동아 기자로 복직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이 전 위원장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종교의 신앙으로 하나의 시련은 더 좋은 삶에 대한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새롭게 도약하여 인간이 하나의 완성이나 성장을 이루는 좋은 방향으로 나가게 됐다”며 “일례로 공천을 못받고 낙선 했을때도 그것이 나를 크게 키우는 도약대가 됐다”고 말하며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는 긍정적 가치관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누구나 어려움은 찾아온다. 겪으며 성장하고 확신을 가져라

 교회에서 간증도 한다는 이 전위원장은 “인생에는 예외없이 시련이 온다고 강조하며 누구를 막론하고 그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해 나간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앞서 얘기한데로 이는 곧 더 큰일을 맡게 해줄 것이라고 확신하면 된다. 자신감을 가지고 좋게 가볍게 받아들여 안주하지 말고 도전해야 성장한다”며 살아온 경험을 비춰 조언했다.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어려서 부터 부모의 과보호로 자라나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군대 기피문제도 그렇고 쉬운쪽으로만 택해 가려는 경향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사회현상을 비판하며 무엇이든지 자신감이 생기려면 강한 인성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함도 강조했다.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보도야 말로 진정한 언론이 가야할 길

 이 전 위원장은 공보처 차관, 방송통신위원장을 맡으며 언론정책을 담당했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지역언론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내비치면서 “인터넷등 각종 매체가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때문에 무분별한 보도로 언론의 피해를 보게 되고, 지역에서는 경영이 어렵다 보니까 광고 문제로 지역언론에 대해 불신하는 경우도 생긴다”며 “자정노력으로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보도야말로 진정한 언론이 가야할 길”이라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더욱이 종편이나 방송이 많아짐에 따라 언론에 황색주의가 만연하여 개개인의 인격이 훼손·침해되어 조심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또 어디까지나 언론은 부정에 대한 것, 정부, 지방자치, 권력자의 잘못도 마찬가지로 사실에 입각한 비판과 보도가 우선시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지역신문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신문들이 자체적으로 하나의 지역사회가 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만큼 산업적 문화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언론이 먼저 제시해 줘야 한다”며 미래지향적인 방향론에 초점을 맞췄다.


 이 전 위원장은 바른 지역언론을 키우기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있어 시민들의 감시의 기능도 중요하다”고 밝히면서 “신문윤리위원회 등에 제소를 해서 바르게 잡는 노력도 필요하다. 시민들의 직접적인 감시, 제도 활용을 통해서 하는 감시도 상당한 견제가 된다”며 바른 언론을 향한 시민들의 의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故 육영수 추모동산 건립위원회 창립, 여사의 정신과 교훈을 되새겨야

 이 전 위원장은 요즘 지난해 말 창립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故 육영수 추모동산 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육여사는 청와대 안에서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올곧은 역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어렵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 헌신했던 따뜻한 한국의 대표적인 어머니상 내지는 아내상으로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육영수 여사가 국가 공식기념장에서 북한공비의 총탄에 맞아 돌아가신 후 국민들은 슬픔과 비통함속에 유비무환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기려야 하지만 국가가 40여년이 지난 지금 순국하신 영부인을 외면해 오면서 육영수 영부인을 기릴 수 있는 것은 소록도에 있는 추모비 정도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전 위원장은 육영수 여사의 장례식은 국가장으로 치러졌지만 이후 기릴 수 있는 곳은 충남 옥천 생가나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 도서관 정도라며 추모동산 건립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전 위원장은 추모동산 건립위원회를 비정치적으로 중앙과 지방조직 그리고 해외지부를 구성하여 회원을 모집하는 범국민운동으로 추진하는 친목단체로 소개했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모아 개인 후원은 가능하나 기업은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며 어느 누구나 참여가 가능함을 덧붙였다.


아울러 올해로 故 육영수 여사 순국 42주기를 맞이하여 추모 뮤지컬 콘서트도 준비중에 있다고 한다. ‘백목련, 아련하고 생생하게’란 제목으로 8월15일 오후 3시, 7시 육영수 여사의 순국 장소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공연으로 40대 이하 세대들은 육여사에 대한 간접적 기억이, 50대 이상 세대는 육여사의 헌신적인 삶을 새롭게 추억하며 그리움과 감동을 더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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